2015년 6월 21일 일요일

Renkontiĝo kun Esperanta spirito


  나는 학부 시절에 불문학과 국문학을 함께 전공했다. 각기 다른 민족의 문학을 동시에 공부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다양성과 상대성을 존중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나는 자멘호프 박사가 민족주의의 이상을 집단 이기주의로 보아 경계했던 것처럼 특정 언어권과 민족을 단위로 하는 두 학과의 수업에서 일부 교우들이 보이는 집단 이기주의적 태도를 경계하려 했는지 모른다. 사실은 나 자신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겠지만, 그나마 문학을 공통 주제로 여러 입장의 목소리들을 접함으로써 상대적 가치들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에스페란토 어가 각 민족의 문화가 지닌 상대적 가치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기조로 한다는 점에서 그 언어보다는 정신에 먼저 관심을 갖게 되었다. 현재는 에스페란토 어를 배우기 시작하였지만, 바로 얼마 전까지도 그 이상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많은 의심을 가졌다. 하지만, 에스페란토 어를 배우면서 에스페란토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여러 선생님들과 에스페란티스토 동지들을 보고 생각을 바꾸었다. 생애의 거의 전부를 에스페란토 운동에 힘쓰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도 이상은 이상일 뿐이라거나 식자층의 점잖은 취미라는 따위의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신념 앞에서 ‘평등’, ‘정의’, ‘대화’를 통해 평화의 실현을 추구하는 것을 보고, 누구도 그것을 폄훼하거나 가능성 여부를 저울질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에스페란토 어를 배운지 얼마 안 되어 상해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에스페란토 정신에 대해 고민하던 중에 낯선 도시에서의 소소한 경험들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하였다. 

  방문 기간의 대부분을 상해에 거주하는 선배의 집에 머물렀다. 선배의 집이 있던 지역은 상해의 중심과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주거 단지가 밀집한 지역이었다. 한국인의 거주 비율이 높아 거리에서 종종 한국어 간판을 볼 수 있었으나, 관광지에서와는 달리 현지 사람들의 일상을 마주하기에는 충분하였다. 상해 인근의 도시들을 돌아본 시간들을 제외하면 일주일 남짓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도시의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의 모습을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언젠가는 출근 시간의 만원 지하철에서 일행과 떨어졌다가 목적지에서 다시 만나기도 하였고, 어느 저녁에는 퇴근하는 선배를 기다리며 지하철 입구 앞에서 장관을 이루는 오토바이들을 구경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밤이면 어김없이 아파트 단지 앞에서 꼬치구이 포장마차가 피우는 메케한 연기와 고기 굽는 냄새를 맡았다. 선배의 집 아래에 있던 상가들 중에는 이번에 나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마라탕 가게가 있었고, 퇴근 시간이면 과일을 사가는 직장인들이 몰리던 과일 가게도 있었다. 어떤 이는 마라탕 가게에서 저렴한 가격에 간단히 저녁을 때우고 있기도 하였고, 어떤 이는 과일 포장지를 뜯어 과일만 장바구니에 담아 가기도 하였다. 떠오르는 전부를 열거할 수는 없지만, 모두가 평화로운 일상의 모습들이었다.

  이곳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면서 내가 가졌던 생각은 인류적 차원의 삶의 모습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류적 삶의 동질성에 대한 인식은 정의와 평등을 실현하는 에스페란토 정신을 이해하는 데에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중립적 인간관을 기초로 다른 사람과 대화와 소통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자멘호프 박사의 인류주의 사상이 의미하는 박애, 평등, 평화, 정의의 의미를 낯선 도시의 일상을 바라보며 떠올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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